책이나 볼까/책도둑

더 로드(the road)/코맥 매카시

이고네고 2010. 1. 26. 11:27

사실 이 책을 보고자 했던게 아니었다.

단지 영화 '더 로드'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묵시록적인 우울함, 회색빛 세상 평소 좋아하는 암울한 현실이 담겼다는 영화소개에서부터

보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지난해말부터 로드가 개봉되기 전까지 개봉되면 꼭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떠있었는데....

 

영화가 개봉되면서부터 조금씩 들려오는 주변의 소문을 들으면서

과연 내가 영화를 직접 볼 수가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무서운 것은 못본다. 처참하고 끔찍한 것도 못본다.

그런데 영화 더 로드는 그렇단다.

 

영화가 전해주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각성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뚜렷하지만

주변에서 전해주는 처참, 끔찍에 대한 설명들이 감히 영화를 보지 못하게 막았다.

나 요새 마음이 약해졌단 말이다.  ㅠㅠㅠㅠ

 

그래도 너무나 궁금한 나는 대용품으로 원작 책을 집어들었다.

yes24에서 코맥 매카시 거 한권만 사려니 배송비가 아까워서

아직 보지 못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까지 한꺼번에  질러버렸다. 

(나는 책은 잘 사는 사람이란 말이다.)

 

책은 순식간에 읽힌다.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그냥 술술 읽힌다.

책을 보는 내내 머리속은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연상되지 않고 단지 침묵만이 느껴진다.

 

책을 보면서 소리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나쁜게 아니다. 전혀 공감가지 않는 책일지라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소리를 느껴왔으니까

정적만이 가득한 책이라는 것은 그만큼 책이 전하는 암울함에 동화되었다는 뜻일거다.

 

책을 읽으면서 왜 영화에서  끔찍한 장면들이 나오는가가 이해되었다.

물론 책보다 영화는 좀더 과장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들의 평가가 이해되어간다.

 

과연 이 책에서 말하는 결말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희망을 말할 수 있는것일까?

320쪽의 절망에 한줄의 희망이라는 홍보문구가 있었지만

그 한줄조차도 내게는 희망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을 덮으면서 좀더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살아가는 에너지와 희망이 무엇일지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사는 끝까지는 열심히 살아야 할 것같다. 

 

추가적으로 한가지 덧붙인다면

코맥 매카시 이사람 글을 넘 잘쓴다. 

320페이지 전체를 뒤적여 봐도 '그리고' '그러나' 등의 연결사가 하나도 없다. 

세 줄까지 가는 문장이 거의 없다. 그래도 머리속에서 영상은 자동적으로 연결되어 나간다.

부러울 뿐이다.